송악산둘레길 - 바당한그릇
오늘은 세 팀의 가족들과 조식타임. 매일 아침 다른 종류의 생선 구이를 먹는 호사를 누리다. 제철마다 생각나는 미나리 무침도 꿀맛. 이제 내일 하루 남았다니 아쉬울 뿐...
아침에 늦잠 자서 화상영어 수업도 날아가버리고, 친구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계속 약을 털어 넣고 험한 말을 내뱉는다. 아침 먹고 한숨 자며 컨디션 회복을 지켜보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서 파면 소식도 듣고 회복된 친구와 함께 집을 나섰다.
어제 날이 흐려서 오늘로 미뤘는데 오늘 날씨 갑자기 흐림으로 돌변하였지만 예정대로 송악산으로 향했다. 송악산 둘레길은 최근 두 번의 제주 여행에서 가려다 놓친 곳이라 두 번 정돈 가고 싶었다. 둘레길이 좋다는 소문을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기대한 바가 컸다. 내 이 모든 기대는 고작 화장실 때문에 시작부터 산산이 조각났지만.... 갓길에 주차를 하고 입구로 들어섰는데 화장실이 폐쇄 상태. 둘레길 코스가 1~2시간은 소요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가 화장실을 참은 채로 출발할 수는 없었다. 잠깐 찾아보고 가자는 말에도 "그냥 가자 시간 없다 가면 있을 거다 없으면 노상방뇨하지 블라블라블라" 아... 고통이다. 다행히 놓친 화장실 1개 제외, 길 시작과 끝에 화장실이 각각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출발한다. 이미 기분이 별로다. 본인 컨디션 때문에 오늘 오전 일정이 날아가서 혼자만 조급한 친구가 당최 이해될 리 없다. 아직 24일이나 남았는데 대체 뭐가 아깝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꾸만 내 목을 조르고, 절벽 끝으로 밀어붙이는 느낌. 과민반응이라고 하기엔 이미 누적될 대로 누적된 정신병이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한 달 살이, 한 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는 친구. 다시금 마음을 다스리고 걷는다. 들어가지 말라고 펜스가 쳐져있지만 그 뒤로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보이자 또 펜스를 넘는다. 또 마음이 진흙탕이 된다. 굳이 굳이 굳이 왜? 중간까지 올라와 쉬면서 친구에게 어제 사온 도넛을 간식으로 건넸다. 안내 표지판에 조형물처럼 한참을 그대로 앉아있던 이름 모를 파랑새가 친구가 떨어뜨린 도넛 부스러기에 반응한다. 갑자기 뭐라 뭐라 새소리를 낸다. 주변에 여기 먹을 게 있다고 알리는 건가? 그러더니 땅바닥에 내려앉는다. 친구가 부스러기를 살짝 던져주자 냉큼 와서 먹는다. 아니 이 친구 먹을 거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파랑새 덕분에 다시 마음이 말랑해진다. 남은 길도 씩씩하게 걸어 나온다. 출발 때부터 친구는 길이 아닌 바닷가를 내려가는 걸 목표했기에 다시 출발지로 돌아왔더니 출입금지 구역이다. 안전을 위해 출입을 금했으나 내려가면 안 되냐고 1차, 안되면 나 저기라도 가보겠다며 2차. 삼세번의 세 번째가 채워진다. 채집을 좋아해서 바닷가 돌덩이들 뒤집어 보고 싶은 마음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가면 안 되는 곳을 가려고 하는 그 행동은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다. 그래 인내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잘 극복해내야 한다. 겨우 해녀의 집 뒤 해변을 밟고서야 돌아오는 친구. 간단히 호떡과 아이스라테로 요기를 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간다. 조수석 2일 차 급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어랏? 그래 이게 친구의 본모습인데 내가 감동받은 이틀은 꿈이었었나? 나는야 왕초보이고 노력하고 있으니 아무 말 마라 기어코 큰소리가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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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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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 주차장은 무료! 입장은 당연 무료. 주차장 자리가 없다면 갓길에도 주차장을 지나 윗길에도, 주차장을 통과해 아래에도 틈틈이 주차할 공간이 있다. 짧은 여행으로 제주 이곳저곳 보고 먹고 즐겨야 하는 경우에 오긴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좀 빡시게 이른 아침 일정으로 오면 하루가 아주 알찰 것 같다는... 숙소가 근처라면 무조건 와야 할 곳.
집에 도착해서 깔끔하게 전진주차 끝내고 저녁 먹으러 출발한다. 동네길 따라 어제 먹은 '바당한그릇'으로 고고. 어젯밤 친구가 좋아하는 황게탕 예약하고 예약시간까지 친구가 원하는 시간으로 정했는데 갑자기 길을 걷다가 친구 왈, '어디가? 어제 먹은데 또 가는 거야?' 띠용~~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요. 이럴 때마다 뒤통수가 서늘해지고 무섭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치매를 젤 무서워하면서 이렇게 본인이 딴소리할 때마다 식겁하는 내 마음을 아느냔 말이냐며 한 움큼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식당으로 향했다. 황게탕은 제주황게를 제주보리된장을 사용하여 끓이는 거라는데 국물 일품인데 살이 맛이 없다며 다시 원래의 친구로 컴백해 버렸다. 그래도 게도 국물도 밥도 싹싹 다 비우고 일어난 친구여. 당신과 밥을 사 먹을 때마다 아주 힘이 듭니다. 쉽지가 않아요.
생각해 보니 새벽부터 어지럼증과 두통이 찾아온 게 아마도 조수석에서 내 운전을 지켜보며 긴장과 스트레스가 쌓였기 때문인 듯하다. 어지럼증마저도 유전으로 나 역시 어지럼증이 있기 때문에 내가 안다.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한데, 예민하기로는 전라도 1 등인친구니 오죽했으랴. 그치만 미안하지만 난 운전석을 내놓을 수 없는걸요. 내일은 더 잘할게요 베스트드라이버가 되어볼게요.